사람은 끊임없이 만남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자연의 만남, 사람과 신의 만남 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그 만남이 아름답고 서로에게 유익함을 주는 발전적인 만남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긋나지만 향수와 정신적인 성장을 주는 만남도 있으며, 한 쪽의 배신이나 기만으로 실망과 실패를 하게하는 만남도 있다.
현대인들이 고독해지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나 사람과 자연의 만남, 사람과 신의 만남 등이 인간적이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잘 설명한 철학자가 마르틴 부버이다.
부버는 현대문명 속의 인간관계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격적 주체인 너로 보지 않고 도구적 존재나 수단적 존재 또는 사물적 존재로 보는 "나 ㅡ 그것"의 관계로 타락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인격적 만남인 "나 ㅡ 너"의 관계회복을 역설하였다. 즉 부버는 관계의 개념으로서 인간의 위치 및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2009.04.02 경남매일 칼럼 <만남> 참조) 인간을 도구적 존재나 수단적 존재로 인식하고 신뢰를 저버리면 갈등이 생기게 된다.
◆갈등(葛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생각과 입장이 다른 개인과 집단들이 많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갈등은 우측으로 감아 올라가는 칡넝쿨과 좌측으로 감아 올라가는 등나무 줄기가 서로 얽히며 올라가지 못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갈등은 욕구나 관심, 가치가 서로 달라 생기기도 하고,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일어나기도 한다.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이 철학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바람직한 것을 잘 아는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한다는 철인정치를 주장하였다.
또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 갈등이다. 신뢰를 저버리는 사람은 소통을 거부한다. 갈등에는 건설적이고 발전이 되는 갈등과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갈등이 있다.
발전적인 갈등이 되려면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을 통해 바람직한 것이 선택되어야 한다. 상호가 동등한 민주적인 인식을 할 때 가능하다. 건설적인 갈등이 되면 관계가 더 좋아지고 발전의 계기가 되어 상생이 된다.
파괴적 갈등은 불신 속에서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일어난다. 권위주의에 젖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많이 야기된다. 바람직한 것이 부당한 것에 의하여 억눌려서 조작이나 왜곡현상이 생긴다. 이런 현상으로 비리와 다툼, 불만과 단절이 일어나고 모두가 불행해진다.
건설적 갈등으로 나아가는 첩경은 문제의 근원을 발본색원하면서 편 가르기를 하지 않고,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의견을 따르는 것이다. 어떤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권위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은 채 권위로 이를 감추거나 억누르려고 하면 권위주의가 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연간 최대 246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 이는 사회갈등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해결하는 일이 국가 발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국가사회를 발전의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도자나 관료, 정치인들이 바른 가치관으로 갈등을 유발하지 않아야 한다. 갈등이 생기면 정직하게 발본색원하여 건설적 갈등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건설적 갈등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 그릇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큰 그릇이 되면 작은 그릇들을 포용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창원일보 칼럼 <정관정요(貞觀政要)와 당 태종과 위징(魏徵)> 참조)
작은 그릇이 되면 큰 그릇이 담기지 않고 발본색원이 되지 않아서 소통과 화합이 잘되지 않는다. 누구나 인간 그릇이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방안의 하나가 제행무상(諸行無常) 인식이라고 여겨져서 고찰해 보았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의미를 알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영원히 고정된 것은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행(行)’은 단순히 사람이 행동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겨나고 변화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제행무상은 인간의 감정이나 물질적 사물뿐 아니라, 사회·관계·생각·몸과 마음 등 조건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가르침이다.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 "모든 현상은 무상하니, 이것이 곧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이다."
생멸멸이 적멸위락(生滅滅已 寂滅爲樂)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이 모두 사라진 고요한 상태가 참된 평안이다."
그래서 제행무상은 단순히 ‘모든 것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허무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괴로움도 변할 수 있고, 새로운 가능성도 생겨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첫째, 모든 것은 변화한다. 젊음과 늙음, 건강과 질병, 만남과 이별, 성공과 실패는 모두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둘째, 변화에는 원인과 조건이 있다. 어떤 현상도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모여 나타나며, 조건이 바뀌면 결과도 달라진다.
셋째, 변화하는 것을 영원히 붙잡으려 할 때 괴로움이 생긴다. 사람은 행복, 재산, 명예, 관계, 건강 등이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지만, 이러한 것들은 본래 변화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넷째, 무상을 바르게 이해하면 집착을 줄일 수 있다. 좋은 일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지나친 집착을 줄일 수 있고, 힘든 상황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제행무상과 인간의 삶
우리의 몸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고 병들며 결국 죽음에 이른다. 감정과 생각도 한순간에 머물지 않는다. 기쁨은 슬픔으로 바뀔 수 있고,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서 누그러질 수 있으며, 불안도 새로운 이해와 경험을 통해 사라질 수 있다.
인간관계 역시 변화한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이었던 사람이 친구가 되기도 하고, 가까웠던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고,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도 한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상황도 끊임없이 달라진다.
이처럼 제행무상은 특별한 사람이나 특정한 사건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삶의 과정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리이다.
불교에서는 제행무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사람은 젊음이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몸은 늙어 간다. 사랑하는 관계가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라지만 상황과 마음은 변할 수 있다. 성공과 재산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변하게 된다.
이처럼 변화하는 대상을 영원히 소유하려는 마음이 집착이다. 집착은 현실의 변화와 우리의 기대 사이에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가 불안과 슬픔,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제행무상을 이해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소중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현재의 순간과 인연을 더욱 소중히 대할 수 있다.
◆제행무상과 무아(無我)
제행무상은 불교의 또 다른 핵심 가르침인 무아(無我)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는 ‘나’라고 부르는 존재가 영원하고 독립적인 실체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몸과 감정, 생각과 기억, 의지와 의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따라서 ‘나’ 역시 고정된 하나의 실체라기보다 여러 조건과 경험이 모여 잠시 이루어진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행무상을 깊이 관찰하면 ‘나’에 대한 집착도 자연스럽게 약해진다. 그 결과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변화하는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제행무상과 새옹지마
새옹지마는 인간사의 길흉화복이 서로 바뀔 수 있다는 뜻으로, 제행무상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새옹지마는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이 될 수 있고,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불행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제행무상 역시 모든 현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조건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다만 두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새옹지마는 주로 인간사의 행운과 불행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초점을 둔다. 반면 제행무상은 행복과 불행뿐 아니라 몸과 마음, 자연과 사회,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의 변화 자체를 설명하는 불교의 근본 원리이다.
◆제행무상이 주는 삶의 교훈
첫째, 현재의 어려움이 영원히 지속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변하므로 힘든 상황도 새로운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둘째, 좋은 순간에도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행복을 소중히 누리되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변화가 찾아왔을 때 더 큰 괴로움을 겪을 수 있다.
셋째,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현재의 사람과 일, 경험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
넷째, 타인의 변화도 이해해야 한다. 사람의 감정과 행동은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한순간의 모습만으로 타인을 단정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상에서 제행무상을 실천하는 방법
제행무상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관찰하고 실천할 수 있다. 감정이 생겼을 때 ‘이 감정도 변한다’고 바라본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현재의 상황이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되 지나친 집착은 내려놓는다.
몸과 마음의 변화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관계가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현재의 인연에 정성을 다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관찰을 반복하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평정심을 기를 수 있다.
제행무상은 세상이 허무하다는 가르침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삶에는 가능성이 있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도 있다는 가르침이다.
행복도 변하고 불행도 변한다. 만남도 변하고 이별도 변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변하며, 지금의 나 역시 계속 변화하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므로 지금의 괴로움에 절망할 필요도 없고, 지금의 행복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도 없다.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현재의 순간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제행무상이 우리에게 주는 깊은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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